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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이야기

돈을 태워버린다면?

*서툰사람* 2016. 8. 22. 14:41

 1994년 8월 22일 두 명의 은퇴한 음악가 빌 드럼먼드와 지미 코티는 비행기를 타고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이너헤브리디스 제도의 유라 섬으로 갔습니다. 이 때, 50파운드 지폐 2만장을 다발로 묶어 비닐봉지에 싸서 갔다고 합니다. 즉, 100만 파운드가 되겠네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다음날 지폐를 쌓아놓고는 불을 질러 태웠습니다. 이런 행동 때문에 이 두사람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말았습니다. 끔찍한 자원낭비를 저질렀다는 것이지요.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행동을 예술행위라고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드럼먼드는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 만약에 우리가 수영장을 만들거나 롤스로이스를 사는 데 돈을 써버렸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돈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분노하는 거죠. 돈을 태운 건 어찌 보면 감상적인 행동이었고, 자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말고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돈을 태워버렸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빵이 줄어들거나 사과가 줄어든 건 아니잖아요. 줄어든 거라고는 종이 뭉치밖에 없다고요."


 이런 말을 들은 토크쇼 진행자인 바이언은 드럼먼드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만약 두 사람이 돈을 지혜롭게 썼다면 세상에는 빵과 사과가 더 많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청중은 바이언의 말에 박수를 보냈고, 말을 이어가려는 드럼먼드에게는 야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드럼먼드가 말한 것처럼 지폐를 태운 행위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잉글랜드 은행이 드럼먼드와 코티가 태워버린 100만 파운드를 다시 발행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대략 50만파운드 지폐 2만장을 인쇄하는 비용은 2000파운드 정도라고 합니다. 잉글랜드 은행이 지폐를 더 찍어낼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잠재적 공급에 못 미치는 경우에, 돈을 더 찍어내면 동일한 가격에서 현재 자원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입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탁아협동조합'의 사례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미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에 맞먹는 수요가 있는 경우라면, 가격은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 상황을 보면 만약에 이미 경제가 수요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드럼먼드와 코티가 돈을 태워버렸다면, 즉 탁아 불황에 처했을 때 증서를 태워버렸다면,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가능성이 높은 경우로서 만약 드럼먼드와 코티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 경제에서 돈을 태워버렸다면 그 효과는 간단히 설명됩니다. 시장의 평균가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가격을 많이 떨어뜨리지 못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개인과 민간 기업의 손에 180억 파운드 정도의 지폐와 동전이 있는 데 반해, 드럼먼드와 코티가 태운 금액은 100만 파운드에 불과했습니다. 민간 부문에서 유통되는 통화량은 매달 수억 파운드씩 변합니다. 따라서 드럼먼드와 코티가 했던 '예술'이 미친 영향은 거의 티도 안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들이 돈을 태운 결과, 180파운드짜리 물건은 평균적으로 1페니만큼 가격이 내려갔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100만 파운드를 태운 것이 통화공급량을 줄여 가격을 살짝 낮춰주는 효과를 냈기 때문에 결국 드럼먼드와 코티는 영국 파운드화를 가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100만 파운드를 나누어 준 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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