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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계의 '선한 사마리아인' 아마르티아 센은 개발에 관해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센은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입니다. '센지수'라고 불리는 지표를 통해 빈곤을 측정하는 연구를 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굶주림과 빈곤은 생산 부족보다 잘못된 분배 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근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개인은 수동적으로 성장의 혜택을 받기만 하는 수혜자가 아닙니다. 그는 각 개인이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발전이란 자유의 증진을 말합니다. 발전을 논할 때 소득이나 부의 증대가 아닌 자유의 증대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유야말로 곧 역량입니다.

 그래서 그는 국가가 각 개인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을 때 그 사회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면 좀 더 자유로운 국가로 봅니다. 그가 사업에 성공해서 그 이윤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장의 자율성과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센이 개발에 관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였던 1943년, 수백만명을 아사시킨 방글라데시의 기근을 목격했습니다. 이후 1974년의 방글라데시 기근을 비롯해 인도와 사하라 지역 국가들의 기아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어릴 때 지켜본 처참한 기근도 식량 공급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공급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정부의 무능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아로 사망한 대다수 사람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최빈층이 아니라 도시 임금노동자들이었습니다. 곡물의 작황이 좋지 않아서 곡물 가격이 급상승했는데,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아 식량을 구매할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상인과 부유층의 곡물 사재기와 인도의 다른 지역 정부가 곡물 가격 인상을 우려해 곡물 수출을 금지한 것이 상당한 원인이었습니다.

 센은 정부나 개발 관련 종사자들이 빈곤층 모두를 한 집단으로 보고 정책을 수립한 게 문제라고 믿었습니다. 어떤 위기냐에 따라 빈곤층도 각기 상황에 맞게 분류해 그에 맞는 각기 다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전체 소득이 높다고 해도 일부 국민은 기근에 시달리고 낮은 기대수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나라의 전체 소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기대수명이 높고 기근에 덜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근에 대해 논할 때 좀 더 포괄적인 시각으로 정밀진단을 해보야야 하는 이유입니다.

 센은 처참한 기근이 식량공급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공급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야기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학자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빈곤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고, 분배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경제' 하면 사람들은 대개 윤리나 양심과는 거리가 멀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여기기 마련인데, 빈곤과 불평등, 기아 문제에 일생을 바친 센에게는 '가슴 따뜻한 양심의 향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식탁위의 경제학자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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