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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세계를 둘러보아도 경제가 제대로 된 나라가 안 보입니다. 유럽, 미국, 중국, 일본 모두가 물가가 낮은 상황(혹은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에서 넘치는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신뢰에 금이 가는 정책들을 계속 실시하는 상황에서 '화폐의 신뢰성'에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모든 게 화폐현상이라고 강조한 통화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문득 생각납니다. 그가 쓴 <화폐경제학>중에서 한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캐롤라인 군도에 있는 한 섬의 원주민들은 석회석으로 만든 거대한 돌을 화폐로 사용했습니다. 섬에는 가장 큰 돌화폐를 가진 부자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가진 돌화폐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몇 세대 전 그 큰 돌화폐를 옮기다 바다에 빠트렸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을 사람들은 돌화폐가 바닷속에 있을지언정 그것은 그 부자의 것이라고 믿고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신뢰가 유지되어야 화폐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프리드먼이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K% 준칙을 주장했습니다. 경제의 흐름과 상관없이 매년 통화량 증가율을 K%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사람들의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현금을 많이 지니지 않고 돈이 거래를 위해 도는 속도가 불안정하고 느려지는 상황에서 프리드먼의 이 준칙은 고수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프리드먼은 화폐 유통 속도가 안정된 세상을 가정한 것입니다. 프리드먼이 K% 통화 준칙을 제기한 당시와 세상이 많이 달라져 중앙은행은 이제 통화량보다는 기준금리로 통화정책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그것도 일본과 유럽 일부 국가는 마이너스 금리로 말입니다.

 프리드먼은 이런 신뢰의 원칙을 항상 고수했을까요? 프리드먼에게도 예외는 있었습니다. 바로 헬리콥터 머니입니다. 이는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새로 돈을 찍어내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말합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리자는 벤 버냉키의 아이디어도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버냉키는 프리드먼의 제자였습니다. 기준금리가 마이너스가 된 후에도 경제가 잘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가 가능할까에 대해서 많은 말이 오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드먼의 주장은 일면 설득력을 가집니다. 영국의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도 프리드먼의 이 이야기에 솔깃해 '인민을 위한 양적 완화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중앙은행이 도로 같은 인프라나 서민 임대주택에 투자하는 기금을 만들면 고용, 경제성장과 물가 인상을 견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 나라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헬리콥터 머니에 대해 합의해야 하는데, 이 둘이 경제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제가 침체되어 있어 수요를 견인할 주체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산 가치를 올리면 간접적으로 수요가 창출될 걸로 믿는 버냉키의 견해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노리는 더 파격적인 프리드먼의 헬리콥터 머니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규모 소비가 필요하고, 이자율 인하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식탁위의 경제학자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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