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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화가 세계 경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과정은 흥미롭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달러화의 위상이 더욱 강해지는 이유는 더더욱 흥미진진하다. 달러화에 얽힌 이 전설은 학계 경제학자들과 금융시장 참가자들과만 관련이 있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베이징에서 요하네스버그, 상파울루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곳곳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진실로 전세계 상당 부분이 자의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달러화라는 거미줄에 붙들려 있으며 일단 붙들렸으면 빠져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의 미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한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달러화가 아니라면 어떤 통화가 있을까? 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수십년간 전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금융 시스템은 국가 간 자금흐름과 각국 통화 간 환율, 국가 간 거래를 촉진시키는 금융시장, 이러한 활동들의 토대가 되는 각종 규율과 제도의 틀을 관리하는 기관들로 이뤄져 있다.

 놀라운 사실은 약 20년 전부터 시작된 전세계 금융시장의 통합화 추세 속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은 찾지 못한 채, 왜 이 금융시스템은 이토록 달러화 중심적인지에 대한 의문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의 대격변기 때 돈을 안전하게 맡겨놓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이 장소는 미국이 되고야 만다. 최악의 금융위기가 진행되면 전세계가 현금을 확보하려 혈안이 되는데 이때도 세계 곳곳은 달러화를 더 달라는 외침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 같은 현실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달러화가 여전히 가장 강력한 부의 보존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으면서 전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간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화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이상한 결과가 나타난 것은 위기가 발발하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안전한 금융자산에 대한 공급이 위축되고 미국이 주요한 안전자산 공급처로 남는 상황에서 수요는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안전자산의 수요와 공급이 왜 바뀌었는지 분석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라앉자 유로존에서 채무위기가 불거지는 식으로 한 위기가 끝나면 다른 위기가 닥치는 상황에서 전세계 투자자들은 신경과민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전세계 금융시장에서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시장의 취약한 부분들과 이를 관리할 효과적인 규제의 부재가 노출됐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취한 조치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거의 주지 못했다. 이 결과 최소한 원금은 보장해주고 쉽게 다른 통화로 바꿀 수 있으며 유동성이 풍부한, 즉 많은 액수라도 쉽게 거래할 수 있는 안전한 금융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주요 선진국의 국채만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킨다. 위기 이후 금융당국이 안전장치로써 유동성 증권을 대량으로 확보하라고 요구하면서 금융기관들도 안전자산 수요를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신흥국들이 외환보유액을 늘리면서 달러화를 쌓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신흥국 정부 관리들은 자본시장이 점점 개방되면서 해외 자금의 유출입이 늘어나면 자국의 금융 시스템이 자본흐름의 변동성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신흥국들의 상황이 좋을 때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자금을 빌려줘 인플레이션 문제를 야기하고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운다. 하지만 일단 문제의 조짐이 나타나면 얼굴을 싹 바꾸고 돈을 거둬들여 도망가기 바쁘다. 이 과정에서 자산시장은 폭락하고 통화가치는 무너지게 된다. 신흥국 정책 결정자들은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해외 자본 유출입과 환율 변동성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달러 트랩'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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