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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달러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세계의 기축통화였다. 미국 경제가 세계 최대 규모가 된 것은 이보다 훨씬 빠른 1870년대였다. 1900년대 초에는 미국이 세계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점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앙은행이 없는 데다 해외 자본 유출입에 대한 수많은 제약 때문에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영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미국은 민간 은행들이 통화를 발행해 화폐가 통일되지 않고 뒤죽박죽인 데다 통화 발행권을 정부가 가져간 뒤에도 은행 시스템이 불안정해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깊지 못했다.

 1913년 미국은 연방준비법을 제정하면서 통화를 좀더 탄력적으로 공급하고 은행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앙은행인 연준을 만들었다. 연준의 설립은 국제 무역과 금융 거래에서 달러화 사용을 확대하는 데 상당한 촉매제가 됐다. 

 미국의 경제정책 외에 외적인 요인들도 달러화의 중요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준비통화의 지위를 두고 미국과 경쟁하던 다른 국가들이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면서 자국 통화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이 결과 준비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이 올라가게 됐다.

 달러화가 영국 파운드화를 앞지른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는 1920년대 초에 이미 미국 달러화가 영국 파운드화를 앞질러 주요한 준비통화가 됐다고 주장하고, 일부는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자리잡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어쨌든 달러화는 파운드화를 앞지른 이후 쭉 세계 금융 시스템의 중심 역할을 담당해왔다.

 달러화의 지배력은 1945년에 출범한 고정환율제인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30년대 대공황 때 국제 무역을 위축시켰던 치열한 환율전쟁을 사라지게 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다른 주요 통화들은 달러화에 고정되어 가치가 결정됐고 달러화는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미국이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밝히면서 금본위제가 끝났지만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미국과 다른 국가 간 경제 규모의 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시장이 되자 달러화의 영향력은 점점 더 막강해졌다.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 무역이나 금융과 관련도니 거래 대부분은 이제 달러화로 결제된다. 달러화는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전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된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에 엄청난 혜택을 안겨줬고 종종 다른 국가들이 '지나친 특혜'라고 비난하는 빌미가 됐다. 미국은 쓸 수 있는 지출한도 이상으로 많은 돈을 써왔다. 미국의 소비와 투자 규모는 미국이 생산하는 산출량을 큰 폭으로 앞지른다. 미국은 달러화의 지배적인 지위로 인해 다른 나나라에서 자금을 매우 저렴한 이자로 조달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이 진 빚, 즉 국채는 모두 달러화로 표기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더 많은 달러화를 찍어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적인 채무의 가치가 떨어져 부채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특권에 애를 태우면서 달러화 중심의 전세계 금융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달러화의 영향을 덜 받게 되기를 갈망해왔다.


-'달러트랩'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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