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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이야기

좋은 자본과 나쁜 자본

*서툰사람* 2016. 9. 28. 00:00

 자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주식, 차입 등이다. 자본은 형태별로 상대적인 비용과 장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많은 신흥국들이 위기에 직면했던 주요 이유는 대외부채가 주로 차입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1999년 잭슨홀 미팅에서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배리 아이켄그린과 하버드대학의 리카도 하우스먼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신흥국들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비우호적인 대우를 받을 운명이었다고 언급하며 '원죄'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당시 신흥국으로 유입된 자본은 대부분 외국 은행들이 제공한 대출과 다른 형태의 차입으로 만기가 짧았고 외국 통화로 거래됐다.

 신흥국들이 당시 차입의 위험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신흥국들로서는 당시 다른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 수가 없어 차입으로 돈을 끌어온 것뿐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돈을 빌려준 개발도상국의 정부를 믿지 않았다. 개발도상국 정부는 필요하다면 자국 통화를 더 찍어내 부채의 실질적인 가치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같은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달러화 같은 경화로 채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1980년대와 1990년대는 경제가 호황이라 돈을 빌린 뒤 만기가 되면 다시 돈을 빌려 차환해 사실상 만기를 연장하는 것이 매우 쉬었다. 이 때문에 개발도상국 정책 담당자들은 차입이 늘어나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외국 통화로 갚아야 하는 단기 차입이 크게 늘어난 신흥국들, 특히 남미 정부는 이렇게 빌린 돈을 생산 역량을 확대하는 데 투자하지 않고 재정수지 적자를 늘리고 소비 호황을 일으키는 데 썼다. 이는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을 때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데 국제 투자자들에게 새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길은 막혔고, 그간 빌린 돈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 해외에 수출할 만한 상품도 거의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차입 대부분이 외국 통화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닥치자 돈을 빌린 국가의 통화가치가 달러화 같은 경화에 비해 급락하면서 외국 통화로 갚아야 할 실질적인 부채 부담이 급증했다. 예를 들어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한국 기업들은 내수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원화로 돈을 벌었는데 달러화 대비 원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그간 빌린 달러화 부채가 원화로 환산할 경우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사업 전망이 밝고 경영이 잘되고 있던 기업들조차 이 같은 대차대조표 효과로 치명타를 입었다. 차입에 비해 외국인 직접투자는 훨씬 안정적이며 여러 가지 혜택이 많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기업에 대한 투자인데 해당 기업의 지분을 100% 보유할 수도 있고 일부만 보유할 수도 있다. 다만 경영권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

 포트폴리오 주식투자는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한다는 점에서 외국인 직접투자와 다르다. 포트폴리오 주식투자는 절대적인 규모 면에서는 클 수 있지만 특정 기업의 전체 지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포트폴리오 주식투자는 기업 경영권을 확보할 만큼 지배적인 지분을 보유하지 않는다. 한 기업에 대한 소수 지분이 대량의 지분보다 주식시장에서 더 쉽게 매매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주식에 대한 자본흐름은 외국인 직접투자보다 쉽게 바뀌고 따라서 변동성이 더 크다. 소수 지분을 팔아 치우는 것이 전체 기업을 매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포트폴리오 주식투자와 관련한 자본흐름은 변덕스럽고 경기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경제가 호황일 때 늘어나고 경제가 어려울 때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며, 자본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주식투자는 신흥국 시장을 초토화시켰던 외국 통화 표시 채권이나 단기 대출의 차환 리스크보다 자본 유출에 따른 위협이 훨씬 덜하다.


-'달러트랩'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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