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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이야기

자본흐름과 국내 리스크

*서툰사람* 2016. 9. 29. 00:00

 신흥국 입장에서 금융시장 개방으로 인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시장 개방이 국내 리스크를 높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의 거래량이 적고 감독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국가로 외국 자본이 흘러 들어온다면 이 자본은 생산성이 높은 장기 투자로 배분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자본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흘러 들어가 거품을 키울 가능성이 높고, 이 같은 자산시장의 버블은 대개 거지게 마련이다. 수많은 연구들은 최근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국내 신용의 급격한 팽창의 일부 신흥국, 특히 동유럽 신흥국들을 어려운 상황으로 내몬 주요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금융시장의 발전 정도가 기업의 늘어나는 해외 진출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것도 신흥국의 리스크 요인이다. 신흥국 기업들은 국내에서보다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하고 자국 통화의 절상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 통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인도 기업들은 2007년에 인도 루피화 절상에 투자하는 방법의 하나로 외국 통화 표시 채권 발행을 원했다. 만약 루피화 가치가 올라간다면 이들 기업이 갚아야 할 부채는 루피화 기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보통 이 같은 환율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거래는 외환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인도 중앙은행은 외환파생상품시장의 섭립을 승인하지 않고 있었다. 외환파생상품시장이 기업들이 수출에서 벌어들인 외화나 수입할 때 지불해야 하는 외화와 관련한 환율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기보다 투기꾼들로 북적거리게 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금조달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해외에서 자금조달을 늘리면서도 환율 리스크를 회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됐다. 

 자본흐름이 배분의 문제를 낳는 것도 신흥국 정부가 심각하게 걱정하는 문제다. 신흥국들은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 사회 안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문제는 개방된 경제일수록 몇 가지 이유로 불평등의 정도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경제 개방의 초기 단계에서 자본시장 개방은 부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더 우호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 시장 개방 초기에는 여전히 외국 자본에 대한 제한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데 이때는 정치권과 관계가 밀접한 대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외국 자본을 이용할 수 있는 이런 기업들은 불충분한 국내 자본에 의존해야 하는 작은 국내 기업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이 같은 정실 자본주의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는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들은 대개 자본 집약적으로 중소기업보다 일자리를 덜 창출하는 경향이 있어 금융시장 개방의 혜택을 더 왜곡하게 된다.

 둘째, 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참여해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면 주식 형태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계가 금융자산이 없는 가계보다 더 큰 혜택을 입게 된다.

 셋째, 자본시장 개방은 자산 다각화와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 불평등을 초래한다. 부유한 가계만이 해외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에서도 가난한 가계는 뮤추얼펀드 같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넷째, 가난한 가계는 해외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은행 예금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국내 저금리 정책의 비용을 상대적으로 많이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가계의 해외 투자를 허용하면서 자본 유출에 대한 통제를 완화했다. 부유한 가계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는 통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가계는 해외에 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에 접근할 길이 없다. 따라서 가난한 가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변동성이 매우 큰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거나 안전하지만 중국 정부가 상한선을 정해놓아 지난 10여 년간 인플레이션을 감당한 실질금리가 극히 낮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인 은행 예금에 넣어두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달러 트랩'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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